북한성결교회 이야기

제목홍원성결교회2022-08-31 23:01
작성자 Level 10

홍원성결교회(함경남도 홍원군 용천면 동평리 442)는 1925년 필기운 전도사를 파송하여 설립하였다. 신설된 이 교회는 1925년 말 신자 수가 남자 40여 명, 여자 10여 명이나 되었다.

처음에는 ‘동평리교회’ 혹은 ‘용천교회’라고 불렀으나 1927년 8월에 ‘홍원성결교회’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설립 이후 날로 부흥하여 1926년 11월 14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며 그동안 기도해 오던 ‘경종을 구입하여 달았다.

1926년 북청지방회 통계표에는 성도총수 73명(세례 4명, 학습21명), 주일학생 85명으로 보고되고 있다.  

1929년 1월 3일∼8일까지 본 교회 전도사의 인도로 청신기도회를 열고 일반이 많은 은혜를 받는 중 중생한 자가 1인이며, 1월 9일∼13일까지 주순진 전도사를 청하여 매일 성별회, 사경회, 구령회 등으로 회집하던 중 일반이 많은 은혜를 받고 새로 믿기로 결심한 자 50여 명을 얻었다.

1월 27일에는 김응조 목사의 주례로 리동환·리주현 씨를 집사로 장립하였다. 4월 6일 주일에는 주일학교 시상식이 있었으며 5월 12일∼14일까지는 기도회를 열고 소아부흥과 주일학교의 부흥을 위하여 기도하는 중 28명의 아동이 사죄의 은혜를 받았다.

7월 13일 필기운 전도사에 이어 김경흡(金庚洽) 전도사가 부임하였다. 8월 15일에는 학습예식과 4인의 세례예식을 거행하고 동일 오후 8시에는 성찬예식을 거행하는 중 많은 은혜를 받았으며 8월 18일에는 ‘부인회’를 조직하였다.

11월 20~24일까지 강송수 목사를 청하여 부흥회를 개최하는 중 많은 은혜가 임하였으며 10월 23일에는 1인에게 학습예식과 사무년회와 집사, 주일학교직원, 부인회직원 등의 임명식이 있었으며 11월 24일 주일에는 추수감사회로 모였다.

1930년 5월 14~15일까지 곽재근 목사의 인도 하에 특별집회를 열었고 8월 18~19일까지는 강송수 목사의 인도 하에 특별집회를 열고 일반이 많은 은혜를 받았다.  

1931년 12월 4~8일까지 박현이 전도사를 청하여 부흥회를 열고 일반이 큰 은혜를 받는 중 중생자 14인과 성결자 9인과 신구도자 10여 명을 얻었으며 그 외에 기도 전도 십일조 성경사고에 대하여 새로운 작정이 많았다.

1932년 2월 제 9회 함흥지방회 홍원교회보고에는 “신자 50여인, 주일학생 70여 명, 오정기도, 성경애독, 서로 사랑함, 열심 전도함, 부인회에서는 구령 열이 팽창함, 열심전도 방문”이라고 보고되어 있다.

2월 17~20일까지 소아부회를 열었는데 아이 중 저희의 죄를 통회 자복하고 주께 큰 은혜를 받은 자가 56명이나 되었다.

10월 1일부터 3일간 강송수 목사의 인도 하에 부흥회를 열었는데 그 결과로 중생자가 10인 성결자가 9인 새로운 결심 자가 13인이나 되었다.

홍원교회는 1932년 12월 17일에 ‘홍원군 룡리’에 지 교회를 설립하였다. 룡리교회는 서민석(徐珉錫)씨 집에서 두 차례의 전도회를 개최하여 결심자 4인을 얻어 12월 29일에는 장·유년 73인이 예배를 보는 중 김병우(金炳祐)란 형제가 주택을 임시예배당으로 바침으로 1933년 1월 2일부터 이곳에서 예배를 보게 되었다.    

1934년 김종인 전도사 부임하여 7월 7일부터 5일간 특별 심령부흥회를 열고 일반은 큰 은혜를 받는 중 ‘정대식’형제는 30원 가격의 경종을 바쳤다.

10월 7일에는 리준수 목사의 주례로 성찬식과 세례식이 있었다. 홍원교회는 1943년 12월 29일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출처 : 한국성결신문(http://www.keh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