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성결교회 이야기

제목개운성성결교회2022-08-31 23:02
작성자 Level 10

개운성성결교회(함경남도 삼수군 관흥면 개운성리 6통 8호)는 북청읍성결교회 신자인 전정섭(全正燮) 씨가 ‘개운성리’로 이주한 후 열심히 전도하여 수십 명의 구도자를 얻었다.

그러나 예배드릴 집이 없어서 많은 어려움을 당하던 중 북청읍교회에서 20여 환을 지원하여 가옥을 매수하고 1928년에 북청읍교회의 지교회로 설립되었다.  

함남지방회에서는 ‘개운성교회’가 설립된 후 교회 형편을 파악하기 위해 1928년 8월 하순에 북청읍교회 리문현 목사와 니망지리교회의 김형식 전도사를 현지에 보내 조사하여 지방회에 보고한 내용을『활천』, 1929년 4월호(48〜50쪽)에 소개하고 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시찰원이 산고곡심(山高谷深)한 4〜5백리의 험로를 주의 보호 하에서 혹은 자전거도 타고 혹은 걷기도하여 3일 만에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하매 그곳 형제와 자매들은 대대적으로 환영하여 주께 영광을 돌렸으며, 당 교회는 금전 융통이 불편한 관계로 주일헌금을 실시치 못하였던 바 시찰원들의 지혜로운 권고로 주일마다 당지 소산물이오 상식식료품(常食食料品)인 감자를 주께 바쳐서 방매작전(放賣作錢) 하기로 하였으며, 간판(看板)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산간벽지(山間僻地)에다 시찰원의 주선으로 예배당 문전에 ‘예수교 동양선교회 개운성결교회’라는 간판을 대서특자(大書特字)로 써 부쳐서 완명미개(頑冥未開)한 일반 동민의 이목을 놀라게 하였으며, 당 지는 8월 하순에도 기후가 한랭(寒冷)한 관계로 시찰원들은 의복에 곤란을 당했으며 또한 식물은 도무지 먹어 못 보던 당지 주민의 보통식물인 귀리밥과 감자밥과 반들 한 감자떡과 소금을 조금 넣고 당근 무우 김치를 먹는 중에 소화불량증이 생기였으나 일반 신자들의 뜨거운 사랑으로 인하여 오히려 큰 기쁨과 위로를 얻어 주께 영광을 돌렸다.”  

1929년 4월, 병자를 위해 한 주일 동안 교회의 주무 정정섭 씨가 다른 신자들과 합심하여 열심히 기도한 결과로 리성수 씨의 미친병과 리신수 씨의 반신불수병과 리춘섭 씨의 체증과 오변선 부인의 마귀병과 진성종·리임바우·리응선·한이근·리맹춘 제씨의 사귀병이 전쾌되어 큰 영광이 나타났다.  

1931년 5월 15〜20일 김형식 전도사의 인도 하에 부흥회를 열고 일반이 많은 은혜를 받는 중 중생자 5인, 성결자 2인, 십일조 작정한 가정 3가정을 얻었다. 김진문 전도사는 1931년 말 현재, 신자 25인, 전정섭·조학룡·전홍식 씨는 십일조드림.(가축의 소득까지)을 지방회에 보고하였다.    

개운성교회는 설립 된지 4, 5년이 되었으나 담임교역자가 없이 신자들이 열성으로 인도하였다. 그러던 중 1933년 11원 23〜27일 김형식 전도사를 청하여 부흥회를 한 결과 성신의 역사로 거듭나고 성결의 은혜를 받은 자가 9인이 되고 또 신유의 역사가 나타났는데 당년 69세 된 리미성이라는 부인은 사귀병으로 3년간이나 고생하다가 이번에 완전히 나음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1934년 10월 20일(주일)에는 ‘추수감사예배’로 드렸는데, 그 곳 토산품인 감자 20여석과 기타를 바쳤는데 시가로 40여 원이 되어 경종을 구입하여 달아 예배시간마다 종을 울리게 되었고 12월 8일부터 5일 동안 유봉운 전도사의 인도로 부흥회한 결과 일반은 큰 은혜 받았다. 안타깝게도 개운성성결교회는 1940년 3월 1일에 폐지되었다.  

출처 : 한국성결신문(http://www.keh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