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성결교회 이야기

제목회령성결교회2022-08-31 23:00
작성자 Level 10

회령성결교회(함경북도 회령군 회령읍 4동 116)는 1925년 6월에 함경북도 회령읍에 교회를 개척하기로 결정하고 경성성서학원 졸업생인 김종인 전도사를 파송하여 설립했다.

9월 19일〜20일까지 양일간 곽재근 목사와 박로희 전도부인을 청하여 ‘대거전도회’를 열었다.

이어 11월 19일〜25일까지 청신기도회를 열고 많은 은혜를 받는 중 사죄의 은혜를 받고 거듭난 자가 2인이며 모든 신자들이 그 은혜에 감격하여 7원이란 적지 않은 돈을 감사함으로 주께 바쳐 그 돈으로 괘종 한 개를 사 걸어 놓고 크게 영광을 주께 돌렸다.

김종인 전도사는 노방전도에 열심이었고, 1925년 말 기준 장년 22명과 주일학생 59명이 모이고 있음을 함남지방회에 보고하였다.

1926년, 사귀병에 걸린 김병진(34세)과 윤경애(19세) 청년이 예배당에 찾아와 살려달라고 애원을 함으로 전도사와 온 교우들이 그들의 집에 가서 먼저 우상의 기구를 다 부서뜨린 후 합심하여 기도한 결과 주의 능력으로 사귀는 물러가고 자신들의 죄까지 회개함으로 완전히 고침 받게 됨에 따라 미신자들이 예수를 믿어야 하겠다며 입교하는 자가 많이 있었다.

1927년 6월 그동안 협착한 셋집에서 곤란이 많았으나 주의 도와주심을 힘입어서 대지 99평 되는 기와집 10칸을 1천원에 매수하여 예배를 드렸다. 또한 9월 24일에는 ‘회령군 운두면 운연동(雲頭面 雲淵洞)’에 지회를 설립하였다.

이 일은 김종인 전도사와 황활용·강인숙 집사가 북받쳐 오르는 열심을 견디지 못해 이 동리로 전도하러 가서 ‘이승화’라는 사람의 집을 빌려 3일간 구령회를 열고 전도한 결과 인가귀도(引家歸道)한 집이 다섯 집이요 믿기로 결심한 자의 총수가 47인이나 되어 지 교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회령교회는 1928년 7월에 교회당을 ‘회령군 회령면 4동 116번지’(대지 114평, 건물 14간)로 이전하였다.

또한 8월 7일〜13일까지 김응조 목사를 청하여 부흥회를 개최하고 60~70명이 모여서 많은 은혜를 받는 중 특별히 전도의 열심을 많이 받았으며 12일에는 세례식(4인)과 학습예식(4인)을 거행하였다.

1931년 1월 28일〜2월1일까지 이정원 목사의 순회기를 이용하여 부흥회를 열고 일반이 많은 은혜를 받는 중 믿기로 결심한 자가 13인이며 마지막 날에는 세례식(7인)과 성찬식과 집사 장립까지 거행하였다.

4월 1일부터는 ‘무기청신기도회’를 열고 기도하는 중사귀병자 3인이 나음을 얻었고, 4월부터 6월까지는 매 주일 노방전도를 하는 중 결심자 175인을 얻었으며, 5월 24일 주일에는 100여 명이 산상예배를 드렸고, 6월 8일〜11일까지는 곽재근 목사의 인도로 부흥회를 열고 일반이 각양의 은혜를 받았고, 28일 주일에는 ‘주일학생 시상식’이 있었다. 1936년 제4회 북부지방회가 1월 25일〜29일까지 회령성결교회당에서 개최되었다.

1938년 6월 2일〜7일까지 이성봉 목사를 청하여 부흥회를 열었는데 차고 넘치는 군중에 날은 덥고 장소가 좁아 어려움을 겪었으나 밤 집회에 4백여 명이 모여 큰 은혜를 나누는 가운데 결심자가 50여 명이나 되었다.

‘신축예배당 봉헌식’이 11월 13일 오후 2시 김영범 목사의 주례로 200여명이 모여 영광스러운 봉헌식이 거행되었다.

이어 16일부터 5일간 회령교회에서는 예배당 신축기념 전도회를 열고 도문교회의 박부익 전도사를 청하여 새벽기도회와 밤에는 전도회로 모여 큰 은혜를 나누었다.

회령교회는 1943년 12월 29일 성결교회가 일제에 의해 강제로 해산당할 때까지 복음을 전하였다.

출처 : 한국성결신문(http://www.kehcnews.co.kr)